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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불러낸 단종의 기억,'태백산 단종비각'

 

(성남뉴스) 태백산 망경대 뒤쪽 능선에 있는 단종비각은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재위 1452~1457)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각이다.

 

해발 고도가 높은 태백산 자락, 망경대 뒤편 비교적 완만한 능선에 자리하고 있고, 오랜 시간 지역민들의 기억 속에서 의미를 지녀 온 장소다.

 

현재의 비각은 1955년 망경사 주지 박묵암 스님이 중심이 되어 건립했다. 한국전쟁 직후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단종을 추모하고자 뜻을 모은 결과였다. 건물은 목조 삼칸 겹집의 팔작지붕 형식으로, 규모는 크지 않다.

 

내부에는 ‘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라고 쓴 비문이 세워져 있으며, 단종을 태백산과 연결하여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문 글씨는 당시 월정사 조실이던 탄허스님의 친필이다. 탄허 스님은 20세기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이자 학승으로, 난해한 한문 경전을 우리말로 풀이해 강설하며 불교 대중화에 힘쓴 인물이다.

 

유·불·선을 아우르는 회통적 사유를 전개한 사상가로도 평가되며, 이러한 인물이 남긴 친필이라는 점에서 비각의 상징성은 더욱 깊다.

 

단종의 생애는 조선 전기 정치사의 격변과 맞닿아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나, 1453년 계유정난 이후 실권을 장악한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됐다.

 

이후 성삼문·박팽년·유성원 등으로 대표되는 사육신이 복위를 도모했으나 발각되어 처형됐다. 사육신 사건 이후 단종은 영월로 유배됐다.

 

영월 유배 이후에도 복위 시도는 이어졌다. 금성대군이 순흥 지역에서 거사를 추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그 여파 속에서 단종은 1457년 열일곱의 나이로 사망했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폐위와 유배,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후대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단종은 역사 속 비극적 군주로 기억됐다.

 

그러나 단종에 대한 평가는 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1698년(숙종 24),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은 단종을 복위시켜 왕호를 회복하고 묘호를 단종으로 정했다.

 

이는 단종이 단순한 폐위 군주가 아닌 정통 군주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국가적 조치였다.

 

이로써 단종의 죽음은 비극으로만 남지 않고, 국가 차원에서 역사적 재평가를 거친 사건으로 기록됐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억은 기록을 넘어 민간 전승으로 확장됐다.

 

태백 지역에는 단종이 태백산의 산신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영월에 유배된 단종에게 머루와 다래를 진상하던 추익한이 어느 날 탄부곡에서 백마를 탄 단종을 만나 행선지를 묻자 “태백산으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전설이다.

 

이후 추익한이 영월 덕포리에 이르렀을 때 단종의 승하 소식을 들었다고 전해지며, 이러한 전설을 통해 단종의 영혼이 태백산으로 향했다는 믿음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전승 속에서 주민들은 단종을 태백산의 산신으로 모시고, 음력 9월 3일 이곳에서 제사를 올려 왔다.

 

이는 단순한 추모 의례를 넘어, 지역 공동체가 역사적 인물을 자신들의 공간 속 존재로 받아들인 행위라 할 수 있다.

 

1955년 박묵암 스님 등이 힘을 모아 비각을 건립한 것 역시 이러한 신앙적·지역적 기억을 가시적인 형태로 남긴 결과였다.

 

오늘날 단종비각은 태백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는 지점으로 남아 있다. 규모는 작지만, 그 안에는 조선 왕조의 정치사, 사육신과 금성대군의 복위 시도, 영월 유배의 비극, 그리고 태백산 산신 전승과 현대 불교계 인물의 흔적이 함께 담겨 있다. 단종비각은 기록된 역사와 지역의 기억이 한 공간 안에서 겹치는 상징적 장소라 할 수 있다.

 

태백시 관계자는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단종의 삶을 소재로 하며 다시금 관심을 끌고 있다. 대중문화는 역사적 인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하고, 그 과정에서 관련 유적과 전승 또한 재조명된다. 영월의 유배지뿐 아니라 태백산 단종비각과 같은 장소 역시 그러한 관심의 연장선 위에 있다. 영화가 불러온 관심이 일시적 흥미에 그치지 않고, 단종을 둘러싼 역사와 지역 전승을 함께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라고 전했다.